2021 슈크리아

노란샤스

썸머 썸머 2015. 11. 1. 12:13

노란 샤스

그 헐렁한 노란샤스는 소매가 길고 가장자리를 검은 실로 박은 큼지막한 주머니가 4개 있으며 앞부분에 똑따기 단추가 길게 달려있다. 오래 입어서 색이 바래긴 했지만 아직도 모양은 근사하다. 내가 그옷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63년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대학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는 어머니가 남에게 주려고 옷을 모아둔 가방속을 뒤지다가 그 노란샤스를 끄집어 냈다.

“ 그 낡아 빠진 옷을 입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내가 1954년에 네 동생을 임신했을 때 입었던거야, ” 어머니가 노란샤스를 개고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 미술시간에 옷위에 덧입으려고 그래요. 엄마, 고마워요 ! ” 어머니가 반대하기 전에 나는 얼른 그 샤스를 내 가방속에 밀어넣었다.

나는 그노란 셔츠를 대학시절 내내 즐겨 입었다.난 그 옷이 좋았다. 졸업 후 새아파트로 이사 하던날 그셔츠를 입었고 토요일 아침마다 집안 청소를 할때도 그걸 걸첬다.

 

이듬해 나는 결혼을 했다. 임신해서 만삭일 때에도 나는 그노란 셔츠를 입었다. 우리부부는 콜로라도에서 살고 있었고, 내 친정은 일리노이에 있었으므로 나는 어머니와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때 그셔츠가 위안이 되었다. 어머니가 15년전 임신했을때 노란셔츠를 입었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웃었다.

그해 크리스마스가 되자 나는 그셔츠가 내게 주었던 따뜻한 기분을 생각하며 셔츠의 한쪽 팔꿈치를 헝겊을 대고 기웠다. 그리고 세탁을 해 다린 다음 포장해서 어머니에게 보냈다.

어머니는 “진짜” 선물을 고맙게 받았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어머니는 셔츠가 예쁘다고 했다. 그러나 그후로 우리는 셔츠 얘기는 다시 하지 않았다.

 

이듬해 나는 남편, 딸과 함께 가구 몇점을 가져 오려고 친정에 들렀다. 며칠후 집으로 돌아와 포장된 상자에서 식탁을 꺼냈더니 식탁 밑바닥에 뭔가 노란것이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바로 그 셔츠였다. 이렇게 해서 노란셔츠는 어머니와 나 사이를 오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 친정에 갔을때 나는 노란셔츠를 부모님의 침대 메트리스 밑에 감추어 놓고왔다. 어머니가 그것을 언제 찾아냈는지 알수 없지만, 거의2년이 지난후 나는 우리집 거실 스텐드 밑에서 노란셔츠를 발견했다. 마침 가구를 다시 손질하뎐 내겐 그셔츠가 꼭 필요했다. 그때 호두색 페인트가 묻어 셔츠에 얼룩이 생겼다.

 

1975년 나는 남편과 이혼했다. 세 아이와 함께 일리노이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짐을 싸면서 깊은 슬픔에 잠겼다. 혼자 살아갈 수 있을지, 일자리를 얻을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나는 성경을 들추면서 위안이 될 구절을 찾았다. 에베소서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나는 하나님의 갑옷을 입고 있는 내모습을 그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내눈에 보이는 것은 얼룩진 노란셔츠 뿐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갑옷 자락이 아니었을까 ? 그러자 새로운 용기가 솟구쳤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나는 그셔츠를 어머니에게 돌려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친정에 갔을때 나는 그셔츠를 어머니의 화장대 맨 아래 서랍에 넣었다. 얼마후 나는 방송국의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

그로부터 1년후 나는 청소도구를 넣어 두는 벽장속의 헝겊 주머니 안에 감추어저 있는 노란셔츠를 발견했다. 뭔가 달라진게 있었다. 앞주머니에 “나는 팻의 것” 이라는 글자가 밝은 초록색으로 수놓여 있었다.

나도 질수 없어 내 자수 도구를 꺼내 몇글자를 추가했다. “나는 팻의 어머니의 것 ” 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너들너들해진 솔기를 지그재그로 수를 놓아 꿰맨 뒤 셔츠를 예쁜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내 친구를 시켜 알링턴에서 이것을 소포로 어머니에게 부치게 했다. 우리는 “ 가난한 사람을 돕는 기관 ”이 어머니가 선행상을 받게 되었슴을 알리는 편지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동봉했다.

상자를 열어보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지 못한것이 유감천만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어머니는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없었다.

 

2년 후인 1978년 나는 재혼했다. 결혼식 날 남편 해럴드와 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골탕먹이지 못하도록 우리가 타고갈 승용차를 친구의 집 차고에 넣어 두었다. 곃혼식을 마치고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리는 신혼여행지로 떠났다. 차 안에서 머리를 기대려고 쿠션 하나를 집어 들었다. 두툼한 촉감이 느껴져 쿠션의 지퍼를 열어 보니 노란셔츠가 결혼 선물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셔츠의 주머니속에 쪽지가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요한복음’ 14장 27~29절을 읽어 보아라. 너희 부부를 사랑한다. ”

그날밤 나는 호텔방에서 성경을 들추어 어머니가 읽어보라고 한 구절을 찾았다.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것은 세상이 주는것 같지 아니하니라.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

그 셔츠는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3개월 전부터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말기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듬해 어머니는 향년 57세로 돌아가셨다.

 

나는 노란셔츠를 어머니와 함께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잫한 일이였다.

그 셔츠는 나와 어머니가 16년 동안 계속한 사랑의 게임을 생생히 상기 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 큰 딸이 지금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데,

 

미술대생은 누구나. 큰 주머니가 달린 헐렁한 노란 샤스가 필요하니까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1 슈크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드위프 에서   (0) 2017.01.30
마말라푸람  (0) 2017.01.25
백서터 할머니  (0) 2012.10.05
북극에 도전한 여인 [3편]  (0) 2012.07.17
헤밍웨이 한테서 배운 교훈  (0) 2012.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