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함께한 한라. 지리. 설악 정상 도전기
산을 좋아하는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꼭 취미로 즐기는 등산의 세계를 자연스레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탁구 같 은 운동 경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1:1 경합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 타인을 의식하는 승부욕이 발동하기 십상이다. 반면 내가 경험 해보기로는 등산은 결국 타인이 아 닌 자기와의 싸움으로 취미로나 건강관리 측면에서 제격이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우 리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족 사랑과 인성교육 측면에도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았다. 그러던 1995년 7월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는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제주 일주관광은 물론 한라산 등산도 스케줄에 넣었다.
처음에 우리 부부는 한라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큰 무리가 없었지만 당시 여고 1년생이던 큰 딸과 여중 2년생이던 작은 딸은 한라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가 정 힘들어 도저히 올라가지 못할 것 같으 면 도중에 그냥 포기하고
내려온다는 복안을 가지고 출발했다.
해발 1.950m로 국내 산 중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은 등반 시발점이 해발 500m 어리목으로 이곳에서 계속 능선을 따라 4~5시간을 올라가면 백록담이 나온다. 나는 이 코스로 정상에 올라간 경험이 있어 문제가 없었으나 우리 애들은 두려워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당초에 4박 5일 여정으로 제주도를 찾았는데 갑자기 태풍경보가 내려 불가피하게 여정이 길어져 7월 22일부터 7월 27일까지 6박 7일을 여행 했다. 현지 교통수단으로는 렌터카를 이용할까 고심하다가 막판에 우리 승용차를 가져 가기로 하고 출발 하루 전날(7월 21일) 부산에서 제주 페리호로 차를 먼저 보냈다. 당시 승용차 1대 도선비용은 105,000원이었는데
무거운 짐은 대부분 차 안에 실을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제주도에 첫발을 내디딘 우리 가족의 제주여행 스토리는 오랜 세월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지만 옛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7월 22일에 대한항공편으로 낮 12시에 제주 비행장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제 주부두에 가서 승용차를 찾았다. 그리고 오후에는 이호 → 곽지 → 협재 해수욕장 일대를 유람하고 저녁에는 현대콘도 숙소로 향하면서 다음날 새벽 당시 여행의 하이라이트 이자 가장 힘든 한라산 등정에 먼저 도전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다음날 7월 23 일 아침에 일어나니 태풍경보가 내려 한라산 입산이 통제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감했다. 우리는 할수 없이 제주도 일주관광부터 먼저 즐기면서 태풍경보가 해제되길 기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천제연·정방·천지연폭포 일대를 먼저 구경했는데 우리 애들도 무척 즐거워했다. 차를 함께 타고 이동하면서 고산 등산을 두려워하는 애들에게 백록담 화산 분화구와 백두산 천지연 분화구를 비교하며 지적 호기심을 유발해 한라산 등정의 동기를 부여하고자 무던 애를 썼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고 즐겨 했던 나는 평상시 가족들과 함께 한라산을 오르는 것을 늘 꿈꿔왔다. 제주도는 신혼 여행으로 와이프와 함께 패키지여행 프로그램으로 온 이후 어연 20년 가까이 지나 아이들과 다시 찾아와보니 한층 기분이 새롭고 흐뭇했다.
내가 처음으로 한라산 등산에 도전한 것은 1968년이었다. 그 해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제주시 → 관음사 → 개미등 → 용진각 대피소 (1박) → 백록담 → 남성리(적십자대피소) → 서귀포의 여정 으로 종주를 했다. 그때는 부산에서 도라지 호(배)를 타고와 4박 5일 머물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태풍경보로 한라산 등정을 이틀이나 더 연기해 태풍경보가 해제되기만 을 애타게 기다리던 우리는 더 이상 연기하며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태풍 경보가 해제되지 않으면 등산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새벽 5시경 한라산 국립공원 사무소에 전화를 했더니 “태풍경보가 해제되어 등산을 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등산 채비를 서둘러 마무리 하고 숙소를 나와 어리목 관리소 앞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어승생 코스로 산을 오르기 시작 했다. 우리는 점심 먹는 시간만 쉬고 비록 느리지만 쉴 틈 없이 올라 5시간 만에 백록담에 도착했다. “여기가 백록담 한라산 정상이다!”라고 내가 일성을 지르자 아이들은 깊은 숨을 헐떡이며 “드디어 우리도 해냈다!”는 감격의 환희 속 으로 빨려드는 것 같았다.
비록 태풍이 지나간 뒤라 등산로 길이 질퍽질퍽해 오르기 가 평상시보다 더 힘에 겨웠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 가족은 낙오자 없이 정상에 오르고야 말았다.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성취감과 기쁨에 “야호”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 얼싸 안았다. 특히 가족등산을 염원하며 주도했던 나는 가슴 깊이 더 깊고 은은한 뿌듯함을 만끽했다.
이날 우리는 “오늘은 무조건 집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오후 6시 30분 비행기로 부산으로 돌아가는 표를 예약했기에 정상 정복의 기쁨을 오래도록 만끽 하지 못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산 정상에서 만세 삼창하고 기념사진 을 찍고 하산 길을 재촉해 정상에 서 어승생 관리소에 3시간 만에 도착했으니 왕복 약 8시간 걸린 셈이었다. 무엇보다도 와이프와 아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걸어 주어 천만다행이었다. 밑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경이라
나는 차를 빨리 몰아 우선 제주 항구로 달려가서 승용차를 부산배에 실었는데 그 시간이 약 40분 걸렸다. 그리고 바로 택시 를 잡아타고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뛰어 들어가 가까스로 막 출발하려는 비행기에 탈수 있었다. 007 시리즈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순 간이었다.
그날 돌아오는 기내에서 나는 당시 제주 가족여행을 정리하면서 ‘애들과 함께 가족의 우의와 사랑을 돈독히 하는 데 있어서 등산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절감 했다. 비록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목표를 달성했을 때 성취감도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에 무리수를 둬서라도 실행할 가치는 충분했다.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 정상등정의 쾌거를 이룬 이후 우리 가족은 자신감을 얻어 용기백배해 그 해(1995년) 겨울방학 때인 12월 22일 중산리 → 법계사 → 천황봉에 이르는 지리산 정상 등정에 도전해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6년 7월 25일 여름방학을 맞아 오색 → 대청봉 → 천불동 계곡 → 설악산 대청봉
정상 도전에도 성공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 4인방은 국내 최고봉인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정상을 등정했다
‘ 국내 3대 명산 최초의 가족 등정을 이뤄낸 기분이었다 !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애들이 학업을 마치고 지금은 둘 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지만 이러한 도전 은
우리 가족의 평생 추억으로 남아있어 요즘도 가끔 이를 회상하며 함께 웃는다.
애 들도 훗날 그들의 자녀와 손잡고 우리가 올랐던 그 산에 오르는 날을 상상해 본다.
* 20년전 사진을 스캔 한 것으로 화질이 안좋은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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