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생각
애당초 나 자신도 스키를 타고 걸어서 북극을 단독 탐험 한다는 것이 당치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들도 데려가지 않고 설상차도 없이 고작 70kg 정도의 장비를
썰매에 실어 내가 직접 끌고 간다는 생각이었다. 셩공하면 그런일을 해낸 최초의 여성이
되겠지만 내 나이는 이미50이었다.
그래도 나는 경험 많은 산악 등반가였다. 나는 뉴질랜드의 커다란 농장에서 자랐는데
근면하고 규율이 엄한 부모님은 자주 등산을 하셨다. 내가 9살이던 어느날 부모님은
높이 2517m의 눈 덮인 에그먼트산 정상에 오르기로 작정하시고 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 배낭을 메고 오를 수 있다면 따라와도 좋아.”
그 후로 나는 전문적인 등산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내가 존경하는 영웅으로는
부모님 외에도 같은 뉴질랜드인 으로서 1953년에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있었다. 1957년 그가 남극을 탐험 했을때 나는 나도 언젠가는
남극이나 북극에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후 여러해가 지나는 동안 나는 은밀하게 극지탐험을 준비해왔던 것갘다. 나는 야외 스포츠를 좋아했다.
뉴질랜드 대표로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대표로 국제 트랙경기 및 필드 경기
등에 출전했다. 1972년에 TV에서 루지경기(썰매활강)를 보고 난후 나는 루지경기를 시작하여
1975년 미국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그러나 나는 결국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선수들과 겨루는 일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목표를 정해놓고 나자신과
싸우면서 그 목표에 도전하는 일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
나는 첫사랑인 등산을 다시 시작하여 뉴질랜드,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소련의
높은산 정상들을 정복했다. 내가 극지 탐험의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 한것은
1986년 레닌봉(소련에서 두 번째 높은 해발7134m의산) 정상에 섰을때 였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주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남편 빌에게 이 계획을 열심히 설몀했다.
“ 거참, 멋진 생각이구려. ” 남편은 나의 북극탐험 계획에 찬동해 주었다. 남편은 내가
하는일은 무엇이든지 뒷받침 해주었으며, 남편 자신도 등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가 왜 이탐험에 나서고
싶어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욕망만으로 일이 되는것은 아니다. 우선 북극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했다.
나는 나침반이 항상 자북극을 가리킨다는 것말고는 북극에 대해 별로 아는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극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찾아갔다.
나는 과학자들이 극의 위치를 말할 때
그들은 평균 지점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북극은 지도상에 점으로
나타낼수 없다. 그것은 늘 움직이는. 표착하기 힘든 것으로서 매일 넓은 지역에 걸쳐
시계방향으로 들쑥날쑥 타원을 그리며 옮겨 다닌다는 것이었다.
나침반은 자북극을 가리키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나 중요한 항해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극지에서는
나침반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고만다. 극지에서는 자력이 수평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침반 바늘이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움직인다.
내가 탐험 계회을 세우기 시작한 1988년에는 자북극이 킹크리스천섬 남쪽에 있는 캐나다의
노스웨스트테리터리에 주로 위치해 있었다. 북회귀선에서 북쪽으로 약1300km 올라간 지점
이었다. 나는 집 근처인 시애틀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극탐험대가 흔히 집결 장소로 이용하는 레절루트만으로 갈 계획이었다.
콘월리스섬의 레절루트만에는 주민 약 250명이 사는 조그만 에스키모 마을이 있었다.
나는 레절루트만에서 썰매를 꾸려 가지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폴라리스 연. 아연 광산자들이 전초기지로 사용하는
리틀 콘웰리스섬으로 갈 생각이었다. 광산 근로자들이 내가 만날 마지막 사람이 될것이었다.
그곳을 기점으로 나는 약 550km에 걸친 탐험에 나서 어지럽게
흩어진 무인도들을 지나고 물개. 북극여우. 북극곰의 고장인 얼어 붙은 광활한 바다를 가로 지를 계획 이었다.
나는 항공기나 설상차에 의한 재보급 없이 내가 직접 썰매를 끌고 북극 까지 스키를 신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러자면 강한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강도 높은 체력단련 훈련을 시작했다. 집근처의
캐스케이드산맥에서 등반과 스키훈련을 하는 외에 나는 하루 15km씩 숲속을 뛰었다. 또 역기도 들고 한번에 여러 시간씩 카약을 저었다.
나는 이번 탐험이 내가 지닌 모든 야외 스포츠 역량을 시험하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영하 45도의 추위, 허리케인과 맞먹는 폭풍, 그리고 언제 갈라질지 모르는 얼어 붙은 바다
를 마음속에 그리며 위험에 대비할 계획을 짜보았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북극곰이었다.
에스키모인들은 북극곰을 나누크라고 부른다. 그들은 북극곰을 겁없이 사람을 쫓아와서
죽이는 무서운 짐승으로 생각하고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곧 1988년 3월이 되었고 나는 레절푸트만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규질랜드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헬리콥터 조종사인 남편이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비행기에 오를때 남편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 내가 눈물을 참으며 대꾸했다.
눈보라가 휘난리는 가운데 비행기가 레절루트만의 얼어 붙은 활주로에 도착했다. 나는 부락의 변두리에 있는 “탐험자들의 집”에서 묵었다.
이 집의 소유주인 베잘 제스다손, 테리 제스다손 부부가 나의 탐험 기간중 매일밤 8시에 나의무선호출을 받아 주기로 했다.
만약에 내게서 4일 동안 연락이 없으면 그들이 수색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안전망인 셈이었다.
내가 썰매를 준비하고 있을때 에스키모인 사냥꾼인 토니가 찾아왔다. 그 역시 다른 여러사람들 처럼
내 계획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토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 곰은 눈에 잘 띄지도 않을 겁니다. 잠 잘때는 곰의소리도 듣지 못할겁니다. 꼭 가실 생각이라면
개들을 데리고 가세요. 서너 마리면 충분 할겁니다. 개들을 다루는 법은 제가 가르쳐 드리지요,”
나는 토니에게 개 여러마리를 데리고 가고 싶진 않지만, 곰이 온다고 내게 경고 해주고 한 밤중에 망을 봐줄 개를 한 마리 쯤
데려가면 어떨까 생각하던 중 이라고 말했다. 그 에스키모인은 이제 안심이 된다는듯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제게 데려 갈만한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그놈은 곰의 습격을 미리 경고해 줄수 있도록
훈련도 받았고 자기를 지키는 법도 압니다 ‘
토니가 몸집이 크고 까만 유순한 에스키모개 한 마리를 데리고왔다. 에스키모인들의 개는 애완동물 취급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 개도 이름이 없었다. 나는 그 개를 찰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에스키모개들은 모진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생존 방법을 터득해야
살아 남을 수가 있다. 그들에게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물개 고기를 던져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들은 혹한의 폭풍이 불어 올때도 집 밖에서 지낸다. 나는 찰리를 다룰 좀더 인정미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나는 그 개와 조금더 다른 방법으로 사귀면 개가 애정을 가지고 나를 신뢰하게 될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말을 걸었다.
나는 탐험을 떠나기전 마지막 사흘을 찰 리가 끄는 썰매에 싣고갈 장비를 수집하면서 보냈다. 마침내 나는 비행기를 타고 폴라리스광산으로 갔다. 출발하는날 오전7시에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무렵 나는 북극곰을 조심하라는 말을 너무 자주들어 극도의
불안감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자 말자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를 안심 시켜 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 그러나 실제로는 곰을 한 마리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이제 탐험에 나선지 이틀이 지났다. 인간의 마지막 전초기지를 25km 뒤로 하고서 나는 썰매에 걸터 앉아 남편의 그 낙천적인 말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내 걱정거리에 관해 얘기 해줄 사람도 내 결정에 조언 해줄 사람도 없었다. 내게 과연 이 엄청난 공포감은 버텨낼
용기가 있는 것일까?
나는 내가 당했던 일을 곰곰이 따져 보려고 애썼다. 북극곰은 모여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여러마리를 만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나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확고한 결의를 다져야만 했다. 그래야 위기를 맞을때 침착하게 처신 할수 있을 것이다.
나는 찰리를 믿고 에스키모인의 말을 믿어야했다. 토니는 이롷게 말했었다.
“ 개가 북극곰과 정면 대결을 해셔 이길수는 없지요. 하지만 찰리처럼 영리한 개는 곰의 힘센 이빨과 발톱을 피하고
곰의 뒷다리를 물어 뜯는 답니다.”
나는 좀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여러해 동안 나에게필요한 지식을 가르쳐 준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히 찰리에게 감사하면서 잠시 기도를 드렸다. 나는 찰 리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중단된 식사
내 북극탐험의 첫째 구간은 폴라리스 광산에서 크로지오해협의 빙판으로 나간다음 서북쪽
으로 베서스트섬이라는 커다란 섬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것이였다.
그 해안선 중간쯤에 굿서강이 있는데 이 강은 얼음이 녹는 여름철에는
사향소, 순록, 레밍쥐, 북극토끼, 북극여우, 흰담비등이 서식하는 곳이다. 그러나 4월에는 강이 얼어 있기 때문에
북극곰들이 이계곡을 이용하여 베서스트섬을 횡단한다. 그래서 이 계곡을 “북극곰 통로”라고 부른다.
토니는 이렇게 경고 했었다. “ 이 계절에 북극곰 통로를 지나가는 것이 슆지 않을 겁니다.”
탐험 사흘째를 맞은 나와 찰리는 유빙이 무너져서 생긴 좁은 틈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걸어갔다. 한번은
썰매를 끌고 얼음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 반대편으로썰매를 조심스럽게 내려
놓은 적도 있었다. 그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갑자기 찰 리가 날카로운 소리로 킹킹 짖어 나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나는 곰이 덮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알고보니 내가 스키로 개의 앞발을 밟은 것이였다. 개가 한발을 들고 있기에 내가 걸음을 멈추고 발을 비벼 주었다.
다행이 상처는 없었다.“ 미안하다, 찰리야.” 내가 말했다. 개는 곧 회복 되었다.
우리는 그날밤 높이 9m쯤되는 빙산 주위에 형성된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야영했다. 그 빙산은 빙하에서 떵어져 내려오다가 대부빙군을 만나 여름 해빙때 까지 갇혀 있는 것이였다. 이튿날 새벽에 살펴보니 그 빙산은 옆면이 매끈하고
꼭대기는 뾰죽탑처럼 들쑥날쑥하여 마치 중세의 성채처럼 보였다.
나는 점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북극지방의 광선과 그것이 주위의 얼음에 미치는 효과에
익숙해져갔다. 저녁녘에 땅거미는 처음에는 부드러운 색조로 조용히 내려 앉았지만 점차로
차갑고 짙은 회색으로 변했고 아침에는 다시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닷세째 되는날 마침내 얼어 붙은 굿서강과 “북극곰 통로”에 이르렀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가는 대신 이곳의 탁트인
시야를 믿고 지름길로 약25km를 가기로했다. 도중에 부빙을 여러개 만났는데 그중에는 폭이 수백 미터나 되는 것도 있었다.
우리는 또 얼음이 갈라져 틈이 생긴곳도 여러곳 지나쳤는데, 그중에는 폭이 머리카락 두께 밖에 안되는 곳도 있었지만
15cm 쯤 벌어진곳도 있었다. 찰리는 물속에 떨어질까 두려워 틈이 넓게 벌어진 곳에는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아침 출발하면서 두 곳에서 곰발자국을 보았었다. 이제 오전 10시가 다되어 식사
시간이 가까워 지고 있었다. 앞쪽에 높이 6m쯤되는 작은 빙산처럼 생긴 얼음 언덕이 있었다. 나는 그넘어에서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음 언덕 앞에 썰매를 멈추자 찰 리가 털을 곤두세우며 요란하게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스키를 벗어 던지고 내 멜빵에서 썰매줄을 푼 다음에 총과 조명탄 발사기를 움켜잡고 찰리와 함께 기다렸다.
찰리는 계속 개끈을 잡아당기면서 어르렁 거리며 얼음 벽을 노려 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성숙한 수콤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나와 잠시 서있더니 믿을 수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뛰어올라 곧장
내 썰매를 덥쳤다. 그놈은 육중한 앞발을 한번 휘둘러 무게가 70kg되는 썰매를 마치 이쑤시개처럼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려 못박힌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찰리는 귀청을 찟을듯이 짖어댔다. 약 7m앞에 있던 곰이 그제서야 나를 보고 뒷발로 일어섰다. 그놈이 공격하려 하자 나는 허겁지겁 행동을 개시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개끈을 풀었다. 그리고 조명탄 발사기를 내던지고 총을 들어 조준사격 자세를 취했다.
찰리는 곰의 오른쪽 뒷다리로 달려들어 있는 힘을 다해 물고 늘어졌다.
곰이 앞발을 내려 네발로 설때 내가 총을 쏘았다. 탄환은 곰의 머리를 빗나갔다. 곰은 입을 크게 벌리고 찰리를 잡으려 했지만
찰리는 곰의 뒷다리를 문채 몸을 비틀어 그 무시무시한 잇빨을 피했다. 곰과 개는 몇바퀴 맴돌다가
마침내 힘센 곰이 개를 떨쳐 버리고 달아났고 찰리는 그뒤를 추격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나는 그곳에 서서 찰리와 곰이 멀리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 보았다.
그러나 안도감은 잠시 뿐이었다. 개를 풀어 주지 말라던 에스키모인의 충고가 생각났다.
개가 곰을 쫓아 갔으니 곰에게 상처나 입지 않을까? 죽지나 않을까
기다리는 동안 나는 썰매를 바로 세우고 나서 몸을 덥히기 위해 이리저리 걸으면서 줄곧 찰 리가 달려간 건너편을 지켜 보았다.
미칠 것만 같았다. 찰 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조그만 까만 점이 하나 보였다. 점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검은 형태가 성큼 성큼
나를 향해 달려오는 보였다. 찰리였다 ! 나는 달려 나가 찰리를 맞이 하면서 털이 터부룩한 개의 목덜미에 내 얼굴을 파묻었다.
우리는 크래커와 땅콩버터가 든 초콜릿으로 축하 파티를 열고 나서 그 곰을 처음 발견했던
얼음 언덕을 지나 길을 재촉했다. 지나다 보니 얼음 구덩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먹다 남은
물개 한 마리가 있었다. 우리가 먹이를 먹던 곰을 방해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놈이 그토록 화를 낸 이유를 알만했다.
찰 리가 물개를 물어 뜯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구해준 상으로 몇분 동안 고기를 먹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문득 곰이 식사를
마치기 위해 되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그놈과 자리를 함께 할 생각이 없었다. 한번이면 족했다.
그래서 나는 찰리의기분은 아랑곳 하지않고 개끈을 잡아 당겼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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