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우리 딸들에게
자연을 즐길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생각으로 그애들을 데리고 캠핑을 갔다.
우리는 야영지에 도착해서 짐을 푼 다음 모두 일에 착수했다.
남편은 딸들에게 부드러운 “침대”를 만들어 줄테니
솔잎을 주워 오라고 시켰다.
다음에 남편은 그애들에게 돌멩이를 주워다 시원한 시냇가에
동그랗게 쌓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상하기 쉬운 음식들을 그 동그란 원안에 놓았다.
남편은 이것이 우리의 “냉장고”라고 설명했다.
다음에 우리는 돌을 동그랗게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석쇠를 얹어서
“화덕”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매우 재미있어 했다.
5살짜리 딸이 자기 아빠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아빠, 우리가 돌을 더 주워 올테니 이번에는 TV를 만들어 줄래요 ?”
문제 하나
시계광고의 시계바늘은 메이크는 달라도
대개 일정하게 가르키고있다.
몇시 몇분일까? 왜 그럴까?
잠자리들이 날아 다니던 베란다에서 백일몽에 잠긴채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보낸 수많은 여름날은 참 행복했다.
나는 13살 되던 해의 어느 여름날
할아버지댁 베란다에서 처음 “베란다해변”이라는 말을 들었다.
산들이 푸른 연기에 싸인것 같고 주위의 공기가 짙은 비내음으로 가득 차있던 나른한 밤이었다. 올 여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로 화제가 옮겨졌을 무렵 마지막 그림자들은
황혼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 무슨 계획이라도 있니 ? ”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아버지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담배파이프에서 빨아드린 연기를 허공에 고리모양으로 뿜어내고 계셨다.
“베란다해변에나 갈까해요.” 아버지는 유쾌한 말투로 대답하셨다. 그러자 모두 깔깔대고웃었다. ‘베란다해변이라고? 거기가 어디지? 언제쯤 가게 될까? ’
나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레었다.
“넌 이미 그곳에 와 있잖니? 아버지가 놀리듯 말씀하셨다. 집안 식구들은 나에게 베란다해변이 어딜 가리키는지 사실대로 말해주고 나서 한바탕 웃어댔다. 베란다해변이란 바로 우리집 베란다를 말하는 것이였고 베란다해변에나 가시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곧 우리는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나로서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이까짓 지루한 베란다에서 도대체 무엇을 구경하겠다는거야?
그해 여름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어면서 차츰 베란다해변이 갖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충분히 모험을 즐길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곳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었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울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지금 까지도 베란다해변을 아끼고 사랑하며 해마다 베란다해변으로부터 새로운 교훈을 얻고 있다.
우리집 베란다에서 나는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과 꿈에 대해 많은것을 배웠다. 또한 약속과 신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때때로 베란다해변은 요새화된 성이기도 했다가 바다위에 떠있는 배가 되기도 했다. 또 고양이가 토끼를 한 마리 집으로 물고 들어왔을 때는 삶의 허무함을 한탄하며 실컷 울수 있는 곳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오후3시가 되면 여름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 반짝 빛나는 주황색 냉차를 베란다로 내오시곤 했다. 컵에 부딪혀 달그락 거리는 얼음소리는 삼복더위의 여름날 오후에 듣는 음악소리 같았다. 어린아이들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서가 아니라 베란다해변에서 지내면서 “베란다에서 지켜야 할 보편적인 행동 규칙을 익혔다.
베란다에서 가끔 방충망 문을 콱 닫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 이상의 소음은 없었다. 어린아이들은 베란다에서는 서로 머리카락을 잡고 싸우거나 뛰어놀거나 침을 뱉는 등의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형제들 끼리 서로 싸울 일이 있으면 정원으로 내려가서 싸웠다.
베란다에서는 어른들도 주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거나 장기를 두었고 세금이나 가계부에 관한 얘기는 꺼리는 눈치였다. 베란다는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느끼는 장소였다. 그 곳에선 생활이 한결 더디게 진행 되었다.
밤이 깊어지면 베란다에서는 한층더 진지한 얘기들이 오갔다. 그럴 때면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나는 침대에 누워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조용한 대화에 귀를 기우리곤 했다. 우리는 때때로 부당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배어 있는 분노를 느낄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이미 떨어진 별들 보다는 하늘을 나는 유성(流星)을 목표로 삼을줄 알게 되었다. 지금 까지 몇 개의 베란다를 더 거처오면서 나는 베란다와 그곳에 오르는 계단들을 감상 할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금년 여름에도 나는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개똥벌레들이 날아 다니는것을 지켜 보기도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한다.
습기가 찬 레모네이드 주전자 표면에 자기들 이름을 쓰고 있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 아이들이 나처럼 베란다해변에서 경험할 수있는, 다음과 같은 값진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이들이 인생의 모진 바람을 견뎌낼 만큼 강하게 자라 주기를 바란다. 밝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 내가 기대 하지못한 방향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란다. 또 자기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 하기를 바란다.
가끔씩은 유성들을 지켜 보기도 하고 비가 그치면 가장 작은 나뭇가지 조차 햇빛을 향해 뻗어 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여름철 미풍 속에서 춤을 추고 억센 잡초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며 봉오리가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모습에 환희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가끔씩 찾아 갈수 있는 곳보다 유유자적 할수 있는곳이 있다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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