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리슈앙을 만난것은 타이베이에 있는
한무역회사에서 함께 근무했을 때 였다. 고등학교에 들이가기 전
여름 이었다. 오빠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나는 올케언니와 사이가 안좋아 항상 기분이 언짢았다. 게다가 불행을 부풀리기 일쑤인 나이 였다.
매일 같이 나는 지구가 곧 끝장 나기라도 할듯한 얼굴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다.
반면 리슈앙은 언제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양볼에 보조개
까지 있어 마치 즐거운 천사 같은 모습 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견본 제품을 분류하고 회사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였다
회사에는 널찍한 제품 진열실이 있었는데 그곳에 우리 둘만 있을때가 많았다. 감독자가 없을때 나는 이 조용한 곳에서 낮잠을 청하곤 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문위에 종을 달아 종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열심히
일하는 척 했다.
너무 곤히 잠들어 종소리를 듣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리슈앙이 언제나
나를 깨워 주었다. 성실한 리슈앙은 나처럼 농땡이 부리는 일이 없었다.
리슈앙은 말이 없었다. 내가 하는 얘기 래야 올케언니가 날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고 우리 부모가 공평치 못하며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참 멋진 생활을 했으리라는 말 따위 였는데도 리슈앙은 항상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다 그 애가 충고라도 하려하면 난 “ 넌 날 몰라, 넌 우리 식구가 아니잖아”라고 쏘아 대곤 했다.
어느날 가족들과 또 한차례 말다툼을 한뒤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간단히 챙긴 가방을 들고 출근한 나는 리슈앙에게 얼마 동안 함께 지낼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 물론 괜잖은데 집이 비좁아,그래도 괜잖다면야.”
나는 괜잖다고 했다.
퇴근후 나는 리슈앙과 버스를 함께 탔다. 마음속으로 리슈앙의 부모가
하게될 질문에 대답하는 연습을 했다.집에서 받아 보지 못한 가정의 따스함을 듬뿍 느낄것이라고 기대 했다.
리슈앙의 집은 멀었다. 우리는 타이베이 기차역 까지 버스를 타고 간뒤 거의 15분을 걸어서 다른 버스를 탔다.마지막으로 15분간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리슈앙의 집에 도착 했을 때는 밤 8시 였다.
리슈앙은 광부 기숙사를 개조한 건물에 살고 있었다.7~8 가구가 한 지붕 아래 지내며 아주 작은 방을 하나씩 쓰고 있었고 부엌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썼다. 리슈앙은 우리집 화장실 보다 별로 클게 없는 비죱은 방에서 살았다.
조그마한 침대는 할머니와 함께 썼다.
리슈앙의 아버지는 전앤 광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행상을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녀 집에 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리슈앙은 아기 였을때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의 보살 핌을 받았다.할머니는 광부들 식사를 만들고 옷을 빨아 주는 일을 했다. 광산이 문을 닫자 광부들은 거의 다른곳으로 떠나고 기숙사는 임대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할머니는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리슈앙은 자기와 할머니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있었다.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는 리슈앙에게 불행의 표정은 없었다. 집은 비죱았지만 깨끗했다. 나무로 된 낡은 문은 얼마나 닦아 됐던지 하얗게 윤이났다.
리슈앙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경리로 취직 할 계획 이었다. 그래서 수입이 안정되면 이 산동네를 떠나 아파트로 이사 하겠다고 했다. 아파트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어 할머니의 불편을 덜어 드릴 수 있다고 했다.
리슈앙의 할머니는 우리에게 국수를 삶아 주었다.아주 맛있었다. 할머니는 내 걱정을 했다. “ 가족들이 완벽 할 수는 없지, 하지만 가족은 피를 나눈 사이야, 너무 오래 미워 하면 결국 가족을 잃게 돼.”
그날밤 리슈앙과 할머니는 내게 침대를 내 주었다. 그들은 비워있는
이웃집 침대에서 잤다.
나는 밤세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갑자기 나의 “슬픔”과 “걱정”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새벽에 일어나니 리슈앙이 공동 취사장에서
오트밀 죽을 만들고 있었다.나를 보자 그애는 떠오르는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 아름답지? 난 여기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게 좋아, 햇빛이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삶에 희맘이 가득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 날 일이 끝난뒤 나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올케언니는 전보다 어른 스러워 보였고 부모님 말씀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얼마 안되어 내
“ 우울증” 은 사라졌다.
여름 동안의 아르바이트가 끝나자 나는 리슈앙에게 집주소를 물었고 그 해 성탄절에 카드를 보냈다.답장이 왔다. 곧 이사 한다는 소식 이었다.사진도 한 장 들어 있었다.문간에서 찍은 일출 사진이었다.
얼마후 우리집도 이사해 리슈앙과는 연락이 끊겼다.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이제는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아직도 리슈앙의 얼굴을 마음속에
간직 하고있다. 가진것은 없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내게 가르처준,
천사같은 보조개를 가진 그 소녀의 얼굴을 - .
우리 딸이 지방에서 열리는 TV 방송의 장끼자랑에 처음으로 출현하게 되었단다.
우리 집에서는 그 채널의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서 우리는 화면이 잘나오는
인근의 모텔로 가서 TV를 보기로 했다.
우리가 모텔에 도착하니 방송 시작 1분전 이었다. 나는 급히 로비로 달려가서
접수계 직원에게 “빨리 방하나 주세요” 하고 소리 치고는 서둘러 숙박인
명부를 작성 했다. 그런다음 나는 방으로 달려 갔고 마누라도 헐레벌떡 뒤따랐다.
내가 방문을 열려고 열쇠를 돌리는데 마누라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모텔의 회의장에서 회의를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웃으며 우리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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