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테니스 시합 '
“ 엄마, 내일 아침에는 정말 일찍 일어나서 테니스를 쳐요 ” 아들이 제의했다. 이튿날
우리는 산타페시가 모두 아직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테니스장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간 다음 테니스 코트로 힘차게 걸어갔다. 꿈같은 일이다.
테니스 코트가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코트를 고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니 이렇게 재수가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양은 떠올라 온기가 퍼지고 있지만 아직 찌는 듯 덥지는 않다.
낮게깔린 구름이 산중턱에 걸려있다.
14살 먹은 아들은 어서 시합을 하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는 몇 번 연습공을 쳐본다.
아들은 아주 잘친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다. 그러나 테니스시합 치곤 좀 이상 한 것
같다. 내가 여자복식 경기를 할때면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없으니 이상하다. 우리는 그저 테니스만 칠 뿐이다.
‘ 그래, 이것도 괜찮지’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제 아들놈에게 한방 먹일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이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지. 우리는 서로 교대로 서브를 넣는다.
아들이 이기기도 하고 내가 이기기도 한다. 우리는 한점 한점을 어렵게 따낸다.
아들은 내게 홍당무와 매를 번갈아 준다. 나는 홍당무가 좋다.
아들은 내가 어려운 공을 잘 받아치면 “ 잘치시는데요.”
“ 바로 그거예요, 엄마 ”하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우쭐해진다.
그의 매 또한 효력이 있다.
아들은 “ 어때? 군살이 빠지는 느낌이 들지요 ?” 하고 말하기도
하고 “ 이건 엄마 다리에 시퍼렇게 나온 정맥을 고치는데 정말 좋을거야”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받아치게 된다.
무슨 이유에선지 문득 바다 생물들을 연구하는 자크 쿠스토가 생각난다. 왜 갑자기 그가
생각날까 ? 나에게 들리는 소리는 산소통을 지고 바닷속을 뒤지는 잠수부의 소리다.
그러나 주위에는 물고기가 없다.
아름다운 산호들도 없고 그 소리는 나에게서 나오고 있다. 이렇게 헐떡 거리더라도
계속 숨만 쉬면 나는 살아 남을수 있다. 살아남는 것이 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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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맞서 공을 치는 10대의 아들은 영양처럼 가볍게 뛰며 자기 네트에 떨어지는 공을
날름날름 받아친다. 그러나 나는 공이 넘어 올 때 마다 숨을 헐떡 거리며서 그공을
받아쳐야 내가 시합에 이길수 있는지를 미리 따져본다.
그 공을 받아쳐야 한다고 생각
되면 아들이 받아치기 어려운 곳으로 공을 보내려고 전력을 다한다.
시합에 이기려면 기민성 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꾀도 있어야 한다.
이제 높은 산이나 경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살아 남는 것만이 문제다. 나는 코트 넘어를 흘끗 바라본다. 혹시 엠블런스가 와야 한다면
어디다 차를 대는 것이 가장 좋을까 생각하면서, 내가 포도당 주사를 맞아야 할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마침내 두세트가 끝났다. 나는 6-4, 7-5로 간신이 이겼다.
언젠가 본 포스터의 문구가 옳았다, ? 나이와 꾀는 언제나 젊음과 정열을 이길수 있다.“
나는 자동차를 향해 기어가다 시피한다. 아들은 집까지 조깅을 하겠다고 한다.
어느 추운날 밤, 우리집 난방시설이 고장났다.
그래서 그날밤 우리는 부모님 집으로 가서 잤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이웃에 사는 사람 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집 수도 파이프가 터져서 우리집과 자기집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급히 차를 몰고 집으로 달려
가다가 도중에 과속으로 적발되어 딱지를 받고 말았다.
집에 와서 보일러 수리공을 불렀더니 도착한 수리공은 우리집 보일러에
맞는 퓨즈가 없다면서 차에 가서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동안 배관공은
물이 새는 곳을 찾기 위해 화장실의 벽을 뚫고 살피고 있었다.
그때 보일러공이 들어오더니 퓨즈 한 개를 높이 쳐들고 이렇게 말했다.
“ 여기 마침 맞는게 하나 있네요.
댁은 오늘 참 운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